‘감각 너머’는 리움미술관의 접근성 프로그램으로, 해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한 해 동안 워크숍, 강연, 포럼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간다. 2025년의 주제는 ‘미디어’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디어는 단순한 기술적 매체라기보다, 감각과 감각 사이를 잇는 매개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탐색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워크숍이 바로 <보자보다보니까>이다. 이 워크숍은 시각장애인, 그중에서도 ‘저시력’이라는 넓고 다양한 감각적 스펙트럼을 지닌 관객들과 함께 ‘접근 가능한 전시 감상’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한 리서치 기반의 프로젝트다. 기존의 접근성 장치들이 주로 시각 정보를 전달하거나 대체하는 데 집중해왔다면, 이 워크숍은 ‘감각의 대체’를 넘어 ‘감각의 확장’과 ‘감상의 다양성’이라는 방향으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긴 기획의 여정이 마무리되어가고 마지막 결과공유회만을 남겨둔 9월 중순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워크숍은 리움미술관 등 공동 기획 파트너가 있지만, 이 글은 매우 개인적인 입장에서 서술함을 밝힌다.
저시력을 다시 묻다
‘시각장애’라는 큰 틀 안에서 ‘저시력’은 종종 간과되거나 단순화된 방식으로 다뤄진다. 전맹 중심의 서사와 구조 속에서 저시력자는 어딘가 애매한 위치에 놓이곤 한다. 이 워크숍의 큰 과제 중 하나도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저시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 범위와 특성은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각기 다른 배경과 시각 조건을 지닌 참여자들이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공통의 지점은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워크숍 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때로는 서로 다른 해석이나 언어의 충돌을 낳기도 했다. “누구를 위한 워크숍인가?” “누구를 배제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은 기획자로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으며, 동시에 워크숍의 윤리적 중심축이 되었다.
저시력은 단일한 기준으로 설명될 수 없는 감각의 연속체이며, 이 워크숍은 그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 존재하는 개별 감각들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아,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새로운 만남을 상상하고자 했다. 기획 초기에는 결과 중심의 전시나 퍼포먼스를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관계와 실험의 과정’을 열어두는 워크숍 형식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단순히 감상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접점에서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장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구성된 10회의 워크숍은 강연, 소그룹 리서치, 공동 실험과 기록, 그리고 미술관 공간에서의 해설 시연까지, 유기적으로 만들어갔다. 다섯 명의 저시력 당사자 참여자, 세 명의 퍼실리테이터와 함께 약 스무 명의 구성원이 뜨거운 한 계절을 보냈다.
감각적 실패 – 실패하는 감각
워크숍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느 날은 감각의 해석이 내가 예상한 흐름을 완전히 비껴갔고, 때로는 참여자의 한 문장이 워크숍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빛의 방향’이 본인의 감상 방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한 참여자의 말은, 사전에 설정했던 대부분의 설명 방식이 ‘정면’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감각적 접근성이란 단지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의 리듬과 거리, 시간을 조율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의 ‘질문’을 함께 잘 만들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서로의 감각적 조건을 존중하며 ‘질문을 교환하는 일’을, 나는, 이 워크숍은, 제대로 하고 있나? 실패나 예외는 창의적 감각의 작동 조건이 되었고, 살아있는 질문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발 늦게 찾아오는 성찰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실패의 감각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접근성’은 누구의 언어로 구성되고 있는가?
저시력의 감각을 어떻게 언어화할 수 있을까?
감각을 고려한 미학적 접근은 가능한가?
이 워크숍은 정말 ‘다르게 보기’를 실험하고 있는가?
저시력의 감각을 어떻게 언어화할 수 있을까?
감각을 고려한 미학적 접근은 가능한가?
이 워크숍은 정말 ‘다르게 보기’를 실험하고 있는가?
‘저시력’에 대한 단일한 정의를 고정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공유 지점을 마련하는 일, 접근성에 대한 기획을 실천적이고 실험적으로 지속해 나갈 수 있는 리서치 플랫폼을 만드는 일, 장애/비장애라는 이분법이 아닌 감각적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창작과 비평 언어를 구축하는 일. 자문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생각은 왜 이리도 질책을 닮았는가.
다양성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모순들
워크숍에서 비장애, 타 감각 중심의 참여자가 느끼는 거리감이나 예술적 주체성과 기획자의 역할에 대한 긴장은 끊임없이 표면 위로 떠 올랐다.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과 ‘시각장애’라는 감각적 범주를 연결하는 순간마다 물리적 조건은 마찰을 일으켰다. 또한 저시력에 집중할 때마다 오히려 다른 인권 감수성이 희미해지는 모순적인 장면도 마주했다. 장애 감수성을 높이고자 했던 논의가 오히려 서로를 검열하거나 일부 목소리를 주변화시키는 상황도 생겨났다. 분명 ‘저시력’이라는 감각의 스펙트럼에 집중하며 이를 중심으로 한 감상 접근성을 실험하고자 했으나, 이러한 지향점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포용성’이라는 단어가 더 모호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벌어졌다.
‘누구를 위한 워크숍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포용하고 무엇을 은연중에 배제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성찰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다양성과 접근성을 말하면서도 그 다양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내부적 모순은 계속해서 협의 방식을 찾는 중이다. 포용성과 접근성에 대한 논의는 기술적 해결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감각을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개념이 아닌 실천으로서의 접근성
무엇보다도 내가 이 워크숍을 기획하며 품었던 바람은, ‘접근성 예술’이 개념이나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 되기를, 나아가 접근성에 대한 도전이 곧 예술적 성취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예술 그 자체가 감각의 다양성과 조건에 기반하여 새롭게 조직되는 방식을 상상했다. 그래서 ‘감각적 접근성’을 실험하고자 했지만,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최소한의 해결과 조건 없이 감각의 확장을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해질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체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공간 구조, 정보 전달 방식, 경험의 차이 등 물리적 기반이 다르다는 사실은, 그 위에 쌓이는 감각적 실험 자체의 전제가 성립되지 못하는 순간들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감각적 포용성’은 어떤 고차원의 미학적 개념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반 위에 세워져야만 가능한 영역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접근성을 예술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곧 예술의 조건 자체를 다시 묻는 일이었다. 결국 예술의 언어, 창작의 구조, 감상의 시간과 관계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시 질문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했을 때, 비로소 ‘접근성 예술’이라는 개념을 재생할 수 있다. 접근성을 단지 외부적 고려 사항이 아닌 예술의 내부 논리로 끌어들일 수 있는가? 저시력 당사자가 아닌, 어디까지나 잠재성을 가진 관찰자로서, 나는 과연 접근성에 대한 실험과 도전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어디까지 접근성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가. 그 실천은 과연 예술일 수 있는가.
이탈한 경로 위에서
‘함께’ ‘모두’ ‘다양’ ‘포용’이라는 단어들이 가진 무시무시한 무게와 복잡함. 이 단어들은 흔히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감각과 정체성이 공존하는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수많은 모순을 감추고 있기도 하다.
‘접근 가능한 예술’이라는 이상이 예술 자체를 새롭게 만들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것이 때로는 얼마나 순진한 상상일 수 있는지, 그 상상 속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숨어 있었는지를 배운다. 이 글은 그 깨달음을 미화하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넘치는 후회를 담은 적적한 소회는 놀라운 성찰과 인내, 실험적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개성 넘치는 결과를 만들어낸 세 팀의 활동과는 별개의 것이다. 이들의 결과물은 나의 예상을 비껴가며 자신의 언어와 감각을 만들어냈고, 기획 의도를 새롭게 해석하여 되돌려주었다. 곧 열릴 결과공유회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우리가 함께 그린 감각의 경로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는 믿음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당사자와 비당사자, 예술과 제도, 감각과 감각 사이를 매개하는 ‘미디어’를 기다려 봐도 될까. 이탈한 경로 위에서, 다시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방향을 조심스레 바라본다.

- 허영균
- 공연예술 기반의 기획자 겸 창작자. 2014년부터 공연예술 출판사 ‘1도씨와 온도들’을 운영하며 리서치 밴드 NHRB의 프론트맨으로 활동 중이다.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공부했다. 퍼포먼스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창작 활동을 모두 공연의 일부로 보고 극장, 공연, 출판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 웹진 [예술경영] 편집위원, 문학도서관 소전서림 총괄 기획, 웹진 [온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더아프로 THEAPRO] 편집장 등을 거쳤다.
y0ung9yun@gmail.com
www.1docci.com - 사진제공_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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