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관계를 되새기는 균열의 시간

공감과 공명은 사회적 상상력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한 예술가가 발신한 목소리에 다른 예술가들이 감응하고 자신의 상상력으로 펼쳐가는 연쇄 칼럼을 기획했다. 제환정 예술교육가의 글에 김현묵 시각예술가, 임체스 교육예술가, 정보희 문화기획자가 각각 감응하는 글을 보내왔다. 예술(교육)가는 어떻게 사회적 상상력을 촉발하고,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여러 갈래로 난 사회적 상상력의 실마리를 함께 찾아보자.
애도의 상상력, 삶을 재구성하는 시간
제환정 예술교육가
그리 친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형제들을 편애했다(물론 나의 주장이다). 나는 종종 아버지의 열 손가락을 깨물면 한 개쯤 덜 아픈 손가락이 내가 아닐까 짐작하였으나, 그게 매우 궁금하거나 상처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7년을 앓았다. 그사이 우리는 “6개월 남짓”을 몇 번이나 들었고, 그는 번번이 그 시간을 넘겨냈다. 병문안을 달려왔던 친구분들이 하나둘 먼저 세상을 떠났고, 윤년에 맞춘 수의도, 혹시나 사둔 검정 정장도 낡아가는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그동안 전기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다니며 자신의 시간을 살았기에, 우리도 예고된 죽음을 막연하게 생각했다. 입원한 지 닷새 되는 날, “점심 먹고 올게”라는 말에 “응”하고 웃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장례식이라는 것은 개인의 이별보다는, 집단적 상상력이 응축된 시간이었다. 슬픔을 견디거나 누리거나 잊거나 맞서는 방법은 제각각이건만, 장례에는 정해진 시간과 따라야 하는 프로토콜이 있었다. 죽음 뒤의 삼일은, 병원의 행정, 법적인 절차, 유교적 전통, 종교적 의례, 자본주의 장례 산업, 지역 감수성, 집안의 각종 사연과 관계성이 총 망라되는 시간이었다. 이 짧은 시간 내에 이 모든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무수한 질문과 채근, 제각각의 당부와 역할을 수행하느라 얼이 빠진 나는, 상실과 애도의 감정을 유예하기로 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절차와 세속적 예의에 맞서지 않으면서, 나름의 애도 방법을 찾아냈다. 어머니는 마당 있는 집에서 어떻게 혼자 살 거냐는 걱정을 스무 번쯤 들은 뒤로는, 외출 시간을 바꾸었다. 14년 차 헬스인인 어머니는 천방지축인 25kg의 진돗개를 한 손으로 제압하시지만, 남편을 잃은 후로 딸의 부축이 필요한 사람으로 간주되었고, 나는 어머니의 치맛단을 번번이 밟으면서도 어머니에게 팔을 내어준다. 유품 정리에 대한 경험담 공유와 은근한 채근에도, 우리는 아버지의 시간과 공간과 기억을 빠르게 치우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아버지의 방은, 잠시 외출한 듯이 옷가지와 읽을거리와 리모컨이 그 자리 그대로다. 아버지의 잡동사니 박물관에서 나는, 잘게 나누어 맞기로 한 슬픔의 시간을 조금씩 꺼내본다. 예술교육자로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아버지의 동선을 재현해보고, 아버지가 좋아하던 단팥빵과 중국집 만두와 모나카 아이스크림과 냉면과 믹스커피를 먹고, 그의 부재에 나른한 슬픔을 느끼며 안도한다.
슬픔의 속도와 애도의 방법, 위로의 언어와 방식에도 상상이 필요하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던 타인의 상징과 감정을, 두루뭉술 명명하고 단정하던 시간을 돌이켜본다. 우리의 감정은 사회의 틀을 따르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며, 결국 고유한 시간을 만들어낸다. 그 균열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상상력은 풍성하기도, 따뜻하기도, 박약하기도 하다. 나는 애도가 지우는 과정이 아니라, 기억과 시간을 다시 재구성하는 시간임을 배운다. 그것은 살아가는 시간과 관계를 다시 사유하게 하는, 새삼 놀라운 경험이다.
  • 전기자전거를 탄 아버지(챗GPT)
경험이 예술이 되는 시간
김현묵 시각예술가·모나드 대표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은 동시대 미술을 하는 예술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책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예술은 경험으로 이해되고, 창작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은 예술의 극히 일부분으로 해석된다. 또한, 예술은 창작자에게서 시작되어 감상자에게 닿으며, 관객이 가진 생애와 연결되는 등 포괄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하지만 우리는 작품으로만 예술을 판단하는 습관이 있다. 고질적이다. 존 듀이가 이 책에서 사유한 것은 1934년의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에게 회자된 개념이지만, 생각의 확장을 일으키는 것은 100년의 세월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문화예술교육에서 교육자는 핵심적이다.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태도로 교육한다’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단순히 예술가적 태도로 교육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평소 생각과 일상이 참여자에게 전달된다. 이것은 작은 습관과 행동, 표정에서 드러나며 참여자에게 비언어적 방법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즉, 교육자가 슬픈데 행복하게 웃는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교육자는 교육을 제공하는 사람이지만, 프로그램의 간접 참여자이기도 하다. 교육의 대상이 되는 참여자와 마찬가지로, 이 활동이 교육자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문화예술교육은 상호교류가 일어나는 활동이다. 아쉽게도 현장에는 이런 이해가 없는 경우가 많다. 교육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계획된 활동을 진행하는 역할로, 참여자는 향유자로 역할을 한정한다. 이는 프로그램이 역할을 지배하는 것이고, 누가 되었건 상관없이 행위가 진행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람인데 말이다.
거장이라 불리는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보면, 일상에서의 경험이 고스란히 창작물에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이 잘 드러날수록 위대한 예술가로 사람들은 평가한다. 어쩌면 가장 사람다운 부분이 작품에서 드러나고, 관객은 이 감흥이 일상에 스며들기에 그런 것 아닐까. 문화예술교육도 예술이라면, 우리는 이것이 가진 과정과 사람다움이 발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많은 이에게 문화예술교육은 아직 예술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교육 서비스의 관점이 지배적이고, 교육하고 양산하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차라리 스승님에게 혼나가며 기술의 미학을 피부로 익히는 도제식 교육이 더 사람답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도제식 교육에서는 스승님의 상태를 파악하고, 어느 정도 눈치 보기라도 한다.
문화예술교육이 사업 언어로 만들어져 예산을 운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허다하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기계를 가져다 놓아도 다를 바 없는 현장이 된다. A.I.니, 로봇이니 하는 미래 산업을 생각해서 교육자도 참여자도 기계처럼 변하고자 준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계는 사람을 모방하고, 사람은 기계를 모방하는 시대이지만, 이런 일들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다 한 줄기 빛처럼, 문화예술교육이 예술처럼 보이는 현장을 마주하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문화예술교육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존 듀이의 책에서처럼, 문화예술교육도 교육자와 참여자의 경험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교육자의 개인적 경험은 교육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을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을 작품으로 한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술은 예술가의 경험에서 시작되어 작품으로 소개되고, 관객의 경험에 연결된다는 존 듀이의 생각처럼, 문화예술교육은 교육자의 경험에서 비롯하여 참여자의 삶에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문화예술교육을 활동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활동(活動)은 ‘살아있는 움직임’이라는 뜻이다. 다르게 읽으면 사람에 관한 이야기, 사람에서 비롯된 것, 즉 살아있는 것이다. 어떤 문화예술교육자, 어떤 사람의 서사가 참여자에게 닿기를 기대해 본다.
  • 모나드 ‘자기주도형 미술교육’ (사진제공_김현묵 모나드 대표)
그녀가 그녀와 이별하는 방법
임체스(임상빈) 교육예술가
그녀는 어제 희미해진 느낌을 받았다. 오늘도 입버릇이 된 질문을 수없이 되뇐다. 왜 여기에 남아있을까. 분명 자신이 하는 일이지만,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나만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 보이질 않았고, 내가 해야 하는 일만 수북이 쌓여있었다. 꾸역꾸역 넘겨보지만, 변비처럼 버거운 일이 돼간다. 콤팩트를 열면 그 얼굴이 들어있어 차마 열어볼 용기가 없다.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미스트를 뿌려 푸석함을 감추면 잠시라도 나를 지켜낸 것 같아 안도감이 찾아오지만, 너무 빨리 증발해 버린다. 생존하려면 두께를 만들어야 하는데, 얇은 피막으로 어찌 견딜 수 있을까 싶다. 어제까지 대단히 중요하고 뿌듯했던 일이 오늘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잘게 잘게 부서져 가루가 되어간다. 오늘을 지켜내고 싶었지만, 어제도 오늘도 쪼글쪼글 말라간다. 오늘을 별 탈 없이 살아내려면, 오늘의 그녀는 죽어 지내야 한다.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 그냥 그렇게 일해야 한다.
건너편에는 너무나 닮고 싶었던 그녀가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일에 매달려있다. 그녀는 점자책을 읽듯이 섬세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오돌토돌 비집고 올라오는 일들의 미묘한 차이를 어쩜 그렇게 읽어낼 수 있는지… 그녀는 교태부리는 고양이가 되어 언제나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덕분에 감을 잃지 않고 일했었나 싶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엉뚱한 일에 파묻히지 않도록 어그로를 끌며 시간을 벌어줄 땐 그녀의 멋짐이 폭발했다. 그토록 강인한 탱커(Tanker) 시절의 그녀를 그녀는 몹시도 흠모해 왔다. 어제까지의 그녀가 오늘도 왔다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 있지만 없다. 오늘의 그녀가 어제의 그녀와 이별한 시점은 그녀가 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없는 듯 있고 동시에 있는 듯 없어서 그녀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다만, 그녀는 자기만의 방을 갖고 있다. 그녀의 방을 몇 차례 다녀온 그녀는 무대의 배역이라도 맡은 양 자신의 다른 모습을 한숨지으며 끄집어냈다. 아니다. 뭔가를 토해냈다. 어제까지 꾹꾹 눌러두었던 그림을 게워 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다, 아니다.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했나 보다. 오늘부터는 그림을 맞추자고 한다. 그녀는 그녀를 따라 퍼즐 맞추기에 합류했다. 그냥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뭔가에 떠밀려 가는 것 같다가도 홀가분해 보였고, 또 뭔가를 꿈꾸는 것 같다가도 포기한 듯했다. 그녀는 그녀에게 그녀의 방에서 멋진 문구를 들었다며 속삭이듯이 읊어줬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실패하지 않는다.” 그럴듯한 오묘함이 있었지만, 꺼림직하고 더부룩한 말이었다. 그녀는 신의 음성이라도 들은 것처럼 경건한 읊조림으로 몇 번을 더 되뇌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밥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그녀에게 묻는 일을 멈추었다. 더는 알고 싶지 않았다.
  • 별장거리축제 (사진제공_정보희 문화기획자)
삶에 온도를 더하는 시간
정보희 문화기획자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 여러 동을 오가기는 했지만, 행정구 기준으로만 따진다면 나는 태어난 동네에서 지금까지 몇십 해를 살고 있다. 한 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좋지 않은 점은 머리와 마음 안에 쌓여있는 동네 풍경의 범위가 넓지 않다는 점이다. 반면 좋은 점은 동네 풍경을 깊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내 마음속 동네 풍경은 단편적인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야기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라고는 하나 낮은 층고의 건물들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동네. 많은 이가 ‘성공하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지’하는 동네. 재개발이니 모아타운이니, 여러 시책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는 동네. 이런 동네에서 유년기, 청년기를 지나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동네는 여러 궁금증을 피어나게 했다. 그중 마음이 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이었다.
허물고 짓고, 부수고 메우고를 무수히 반복하는 과정에서도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는 상인들이 있었다. 구청의 지원으로 간판이 몇 번 바뀌기는 했지만 가게 안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궁금했다. 비슷한 풍경을 보여주는 가게에 스며들어 있을 누군가의 이야기가. 이 마음을 담아 2023년 <별장길 사람들>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나의 오랜 삶터이자 일터인 별장길에 있는 상인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였다. 본격적인 인터뷰는 처음이었던지라 전문 작가에게 배움과 도움을 구했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주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건 ‘시작하길 잘했다’였다. 한 명 한 명의 삶에 상상할 수 없던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에는 또 다른 별장길이 있었다. 출퇴근길에만 붐비며 삭막하기 그지없던 골목길은 누군가에게는 어릴 적 뛰어놀던 놀이터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십 년 전 시집와 마주한 서울의 첫 모습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니 별장길은 달라졌다. 이전에는 편편한 선 위에 서 있는 점과도 같은 느낌이었다면, 인터뷰 후에는 그림에 입체감이 생기고 색이 칠해졌다. 이따금 노래도 흐르는 것 같았다. 동네 풍경이 다양해졌다.
2023년, 2024년 지역 축제를 준비하며 인터뷰 프로젝트를 다양한 형식으로 주민에게 소개했다. 축제에 오는 이들이 별장길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상상해보는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 별장길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모습으로 피어났으리라. 그리고 새로운 궁금증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나와는 다른 궁금증들이 모여 상상과 행동으로 연결되었을 때, 삭막했던 별장길에 온도를 더하는 변화들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그 변화를 열렬히 환영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의 사회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실험과 시도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제환정
제환정

예술교육가. ‘모든 인간은 무용수’라는 믿음으로 춤과 춤추는 인간을 독려하고 탐구하며, 세상 구석구석 예술이 있기를 도모하고 있음. 예술교육자, 창작자, 연구자로 활동하며 춤이 필요한 곳에서 활동 중.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부교수.
jaehj@ewha.ac.kr
김현묵
김현묵

시각예술가, 문화예술교육가, 문화기획자, 문화예술교육 거점 연구자 등 여러 직함이 있지만 활동을 대하는 태도는 예술가이다. 그래서 ‘묵작가’라는 이름으로 가장 많이 불린다. 문화예술단체 모나드를 운영하며 다년간 문화예술교육을 연구하고 시대와 지역에 부재한 문화적 역할에 관해 고민하였고 다양한 예술인과 교류를 즐긴다. <도민미술학교> <예술공유창작소 꼴로크> <엥? 이게 된다고?> 등을 기획했다.
mookworld@gmail.com
임체스(임상빈)
임체스(임상빈)

교육예술가. 근래 들어 엄마가 뭐 하는 일인지 좀 설명해보라신다. 나름 괜찮았던 프로젝트 에피소드를 정말 맛있게 꺼내놓았다. “그런 거 하는 데 돈 주는 곳도 있냐?” 아직도 여전히 우리 일은 갈 길이 멀다.
84178417@naver.com
정보희
정보희

문화기획자.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동네가 즐거웠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지역 중심의 기획 활동을 하고 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그것이 개인의 또 다른 경험이 되는 과정을 통해 재미있는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양한 활동을 개진하고 있다.
bori@susco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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